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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의 神’이라 불리는 사나이 박주봉...그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져

기사승인 2019.06.17  15: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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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제주, 창간11주년 기념 ‘박주봉 감독 초청, 제주 배드민턴 아카데미’ 29일 개최...제주시 사라봉 다목적 체육관, 권승택 前 국가대표 감독 참여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전주시 인후동 박명수씨의 집 4남 2녀 중 막내 박주봉의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바로 배드민턴 황제 박주봉의 현역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들이 찾아와 가져간 사진을 되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북의 아들로 태어나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한 박주봉(朴柱奉).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국제대회 71회 우승의 복식경기부문 최다 기록으로 91년 기네스북에 오른 그가 처음 라켓을 잡은 것은 풍남초등학교 3학년 무렵.

1m80㎝이 넘는 아버지가 학교에서 배드민턴 감독을 맡았던 인연으로, 형들이 라켓을 휘두르는데 동경을 품고 아버지에게 졸라 배드민턴에 뛰어 들었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은 박주봉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동네 골목길에서 딱지치기·구슬치기에 몰두할 시간에 어린이 주봉은 온갖 방법을 통해 이기는 법을 연구했고, 질 때마다 당시 경기를 되돌아보며 오답노트를 적듯 실수를 하나씩 경험으로 만들어 나가는 등 ‘연습벌레’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2회 소년체전(부산) 단체전 우승을 시작으로 박주봉은 서중학교 시절 단식·복식·단체전에서 전국을 휩쓸었다.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라이벌 중학교들은 단체전 5경기 중 주봉이 뛰는 단식·복식 2경기를 빼고 나머지 3경기를 이겨야 우승할 수 있어야 할 정도였다.

평생 교직에 몸담으신 아버지의 ‘운동은 학업과 병행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전주농고에 입학한 주봉은 일반까지 참여하는 한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1학년 때 단식 종합우승을 차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러한 배드민턴 신동의 열정과 승부욕은 80년 고1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배드민턴 신동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 스타 탄생을 예고하게 됐다.

탄탄한 연습으로 다져진 기교와 가히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로 하늘같은 선배들을 제치면서 당당히 고교랭킹 1위를 움켜쥐었다.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국가대표로 81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교환경기에서 정상에 서자 일본은 한국배드민턴에 충격을 받고 유학을 제의했으나 박주봉은 과감히 뿌리쳤다.

81년부터 84년까지 국내대회 단식부문 103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박주봉은 이젠 국제무대로 눈길을 돌린다.

82년 덴마크 오픈에 이은구 현 전북은행 감독과 복식으로 처녀 출전, 단숨에 왕좌에 올라 ‘배드민턴 신인 박주봉의 전설’ 서막을 알렸다.

83년에는 이후 10년간의 배필 김문수를 만나 ‘신화 창조’를 확대해 나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오른손잡이 박주봉은 다소 왼쪽에서 오는 공격이 약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왼손잡이 김문수와 환상적인 복식조를 이뤄 핸디캡이 극복되자 3회 말레이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세계선수권에서 첫 메달을 따는 등 연승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84년 32회 덴마크오픈, 29회 스웨덴오픈, 85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하고 75회 전영오픈에서 우승한 후 ‘남자복식의 교과서’라는 별명을 현지 언론과 국제연맹 관계자들이 붙일 정도로 배드민턴을 넘어 모든 스포츠계에 최고 선수로 등극했다.

박주봉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부문에서 역사적인 금메달을 걸고 ‘1차’ 은퇴한다.

그러다가 최고권위 전영오픈을 3연패했고 85년 캘거리 세계선수권에서 남복 및 혼복(정명희)에서 2관왕을, 86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88 서울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이지만 혼복(김연자)에서 금메달을 걸었다.

그러나 언제나 박주봉에게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86년 대만오픈 단식 결승에서 허리를 다쳐 6개월 여간 요양을 해야 했고, 87년 북경 세계 대회 때 준결승 도중 갑자기 쓰러지게 된 것.

운동 포기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이어졌지만, 특유의 끈기와 오기로 다시 훈연을 통해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했던 박주봉은 집안 어른의 중매로 만난 이수진씨와 92년 8월 결혼했고, 한국배드민턴의 명예를 위해 93년 일시 복귀해 세계혼합단체전에서 다시 우승을 조국에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94년 1월 ‘2차’ 은퇴이후 한국체육대 전임강사·조교수를 지내고 ‘주봉브랜드’ 스포츠용품을 만드는가 하면 세계최고 갑부 브루나이 왕실의 초청을 받아 배드민턴 교실을 열었으며 왕자와 직접 시범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배드민턴 현장에서 영원히 떠나 있을 것이라고 모든 이가 생각하던 95년 5월 세계대회에서 덴마크 혼복선수가 우승하는 걸 보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복귀했다.

복귀 직후 6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나경민과 혼복에 출전한 애틀랜타에서 후배 김동문-길영아 조에게 금메달의 영광을 양보하고 ‘3차’로 영원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박주봉등 세계 정상급의 스매싱 셔틀콕의 비행속도는 시속 3백㎞에 육박해 순간 최고속도는 공으로 경기하는 운동경기 중 가장 빠르다.

골프공이 250여㎞이고 양궁 화살이 2백35㎞, 테니스 서비스볼이 2백㎞, 세계 메이저대회 강속구 투수의 빠른 볼은 겨우 1백60㎞수준에 미칠 정도다.

지독하고 성실한 연습과 천재적 두뇌플레이, 노련한 경기운영, 상대코트 빈곳을 찌르는 날카롭고 빠른 스매싱, 완벽하게 유연한 푸트워크, 파트너를 편안하게 해주는 경기스타일로 세계를 평정하고 은퇴한 이후 주봉은 영국에서 1억 원의 연봉과 학업 보조를 지원받아 땅에 떨어진 종주국 영국의 배드민턴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97년 박주봉은 국제배드민턴연맹이 뛰어난 공적을 세운 인물에게 주는 ‘허버트 스칠상’을 받았다. 이 상은 34년 국제연맹 창설이래 63년 동안 7명에게만 주었으며 당시 단식여왕 수지수산티(인도네시아)와 경합을 벌이다 최종 선정됐다.

◈ 국제무대에서의 그의 위상은 ‘펠레’ ‘알리’ ‘베이브 루스’ ‘마라도나’정도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박주봉은 국제무대와 국내대회를 휩쓸 당시 ‘국내에서는 경기할 맛이 안 난다’고 가끔 말했다. 썰렁한 관중석이 선수의 사기를 떨어트린 이른바 비인기종목의 설움이다.

하지만 종주국 영국 등 북유럽과 동남아의 배드민턴 열기는 한국과 천지차이다.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열광하는 관중들사에서 전영오픈 9차례 등 각종 오픈대회를 수십 차례 석권한 박주봉은 현지의 국민적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펠레’ ‘알리’ ‘베이브 루스’ ‘마라도나’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주봉이 영국코치를 맡다 말레이시아 코치로 옮겼을 때 현지의 언론은 ‘박주봉을 놓친 영국의 손실은 곧 말레이시아의 이득’,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복식 선수였던 박주봉이 2년간 지도한 영국팀은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썼다.

또 80년대 중후반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주봉 햄버거’ ‘주봉 아이스크림’ ‘주봉 쥬스’가 박주봉의 경기 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박주봉의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에 매료된 말레이시아 여기자, 중국 여 선수, 일본 여성 팬은 일부러 한국어를 배워가며 공개적이고 끈질기게 박주봉에게 몇 년간 사랑을 호소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박주봉에게 의미 있는 대목이 있다면 경기력향상 연구연금 일시불 순위에서 전이경 채지훈 김기훈 김소희등 쇼트트랙 4명에 이어 8천9백62만원으로 5위에 있다는 것.

국내 스포츠스타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는 인터넷 ‘후추’사이트 ‘명예의 전당’자리에 3번째로 오른 것 등이다.

박주봉의 살아있는 신화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로 태릉에서 대표팀 오래달리기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 지구력, 복싱선수 허영모와 권투경기를 하며 두 배 많이 빠르게 뛰어 박주봉이 승리했던 현란한 푸트워크등 수없이 많다.

자존심의 나라 영국은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박주봉에게 ‘말레이시아를 혹시라도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영국의 지도자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 박주봉 감독 경력 내역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 박명수(朴明洙) 김판곤(金判坤)씨의 4남2녀중 막내

▲ 80년 고1때 국가대표 발탁

▲ 국내대회 103연승

▲ 82년 덴마크오픈 한국 복식 처녀 우승, 85년 세계선수권 한국 처녀 우승, 86년 아시안게임 3관왕, 91년 전영오픈 3연패,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등 세계 각종 배드민턴 대회 72회 우승(현재 최다우승 기록)

▲ 체육표장, 체육훈장 기린장, 체육훈장 맹호장, 체육훈장 청룡장,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체육상, 스포츠서울 체육상 수상 등 다수

▲ 97년 역대 8번째 허버트 스칠 트로피(배드민턴계의 노벨상) 수상

▲ 국내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 수상

▲ 세계 기네스북 등재(배드민턴 세계 최다 우승)

▲ 82년 이수진씨와 결혼, 아들 광열

▲ 학업 정진 후 국제연맹 임원 등 스포츠 외교 계획

▲ 현재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참고자료] 일간제주 창간11주년기념 '박주봉감독 초청 제주 배드민턴 아카데미'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 일 시 : 2019년 06월 29일(토) 13:00

□ 장 소 : 사라봉다목적체육관

□ 주 최 : 일간제주

□ 주 관 : 박주봉스포츠

□ 후 원 : 제주특별자치도배드민턴협회

□ 행사계획

○ 13:00∼14:00 팬사인회(어느누구도 참석 가능)

○ 14:00∼17:00 배드민턴아카데미(선착순 50명 : 마감)

   
▲ (사진-박주봉 스포츠)ⓒ일간제주

일간제주 news@ilganje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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